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취향을 갖는다

여행스타일도 그러하다

주변인들과 여행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확연한 선호의 차이를 보이는 것 중 하나가 혼자하는 여행과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을 고르는 것이었다

나는 고르라면 당연히 후자인 사람이다

혼자하는 여행은 해 본 적이 없어서 고를 수 없었고

앞으로도 가능하다면 여행은 친구이든 친구든 누구와 함께 하고 싶기에 고를 이유가 없었다

 

혼자 여행도 되게 재밌고 좋아!! 라고 말하는 사람도 아주 많았다

그 때마다 "아 그래? 근데 난 별로 생각없어. 난 새로운 곳을 가고 좋은 걸 먹을 때 그걸 공유하고 바로바로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 라고 말해왔다.

평소에는 "이게 좋대" 라는 누군가의 추천에 금세 솔깃해지는 편인 나인데도 이상하게 혼자 여행은 전혀 끌리지가 않았다.

 

딱 1년 전인 작년 8월, 동기들과 이야기하다가 대규모 국토대장정과 나홀로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 무엇을 더 선호하는지 골라보았다

망설임 없이 국토대장정을 고르는 내게 동기는 "예상했지만 넌 정말 이해 안 간다."는 말을 했다

나는 이게 나라며 웃었다

 

 

그리고 2021년 8월 말,

근래 몇 달 동안 계속 내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여행을 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사람들과 만나는 걸 좋아하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좋아했다

그러나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는 점심시간 그 어색한 적막을 깨기 위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점차 피곤해졌다

'이 이야기가 팀원들 모두 있는 데에서 말할만한 주제인가? 공감이 될까?' 같은 많은 단계의 검열을 거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고 그렇게 꺼낸 이야기가 깊이 있는 대화로 이어지거나 진솔한 감상을 나누는게 아니라 적당한 소음을 만들어주는 정도에 지나지 않음을 느끼자 불편해졌다

결국 사람들이 그냥 회사 욕, 다른 사람 험담을 하는 편이 편리하게 느낀다는 것도 느꼈다

점점 '오늘은 무슨 주제를 꺼내야하지. 아 이런이런 이야기를 해야지', '이 얘기는 나중에 다함께 있을 때 한 번에 얘기할 만한 주제니까 아껴둬야지' 라는 숙제 검사를 받는 마음으로 내 휴게시간을 대하고 있었다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는 걸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지난 2년 간 내게 허락된 대화-회사 안팎 모두에서-는 말 그대로 수박 겉 핥기 식의 이야기 뿐이었음을 느낀다

요즘 어떤 드라마가 재밌는지, 머리를 어떻게 바꿨는지, 주식 시장이 어떤지 하는 잡다한 이야기들도 필요하고 때로 재밌다

그러나 '~하더라'에서 끝나는 대화만으로는 더 이상 어떤 감동이나 즐거움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인가 재미있다면 왜 재미있는지, 그 속에 정말로 불편한 것은 없는지, 있다면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까지 나눌 수 없다면 그건 대화가 아니라 발설이고 소음이라는 생각을 한다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던 것은 확실한데 (갑자기) 어쩌다 이런 사람이 되었는지는 명료하지 않다

며칠 골똘히 생각해봤지만 어떤 시점, 어떤 이유에서인지 잘 모르겠어서 이게 나이가 드는, 성숙해지는 과정인가보다라고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시끌벅적한 게임방송이나 그럴싸한 브이로그나 짧은 예능 클립들을 보던 내가 시작이 언제였는지 인지하지도 못할 때부터 서서히 책, 부동산, 철학 -결국은 자기계발- 등의 주제를 담은 유튜브를 찾아보기 시작한 것이 마침내 내 안에 싹을 틔웠는지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해보자"라는 꽤나 대견한 떡잎을 가진 싹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행이 좋았던 것은 사실 두려워서였는지도 모르겠다

말이 통하지 않는 해외에서도 항상 당당하게 길을 앞장 섰던 나였지만 그 배경에는 여차하면 여행메이트들이 날 도와줄 수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그리고 혼자하는 여행에 대한 너무 많은 긍정적 후기들과 필요성을 주입 당한 것이 오히려 반감이 주었기도 하다

이번 여행에서 난 그다지 대단한 걸 느끼지 못하고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래도 괜찮다는 마음이 든다

잘 생각해보면 내가 여태 다녀온 수많은 여행에서도 크게 대단한 걸 느끼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 순간 재밌었고, 새로운 음식이 맛있었고, 잘 나온 사진을 몇 장 건졌던 것 말고 그 곳에서 나 스스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는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그저 휴양과 맛집 탐방으로 끝나는 여행일지라도 괜찮다

욕심을 내려놓자 용기가 생겼다

 

-

 

지금 내게 다시 국토대장정과 산티아고 순례길을 고르라해도 순례길을 고르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때처럼 망설임 없이 국토대장정을 고를 것 같지도 않다

나에게로 떠나는 나의 첫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쯤에는 17박을 혼자 걷는 그 막막한 순례길도 나의 버킷리스트에 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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